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들의 새로운 도전

윤태웅 ESC 대표·고려대 공대 교수

닻을 올리다

“우리는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추구한다!” 지난해 6월 18일 ESC가 창립대회를 열며 내건 기치다. ESC는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의 영문 이름인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의 첫 글자 모음이다. 컴퓨터 자판 맨 왼쪽 위에 있는 키를 나타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ESC엔 그렇게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 현실의 구태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과학기술이 단지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만은 아니라는 생각, 과학과 수학이 사유방식이자 문화로서 핵심 교양(Liberal Arts)의 한 축이라는 생각, 그래서 과학·수학적 사유와 태도가 자유롭고 비판적인 민주공화국 시민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 과학기술이 권력 집단이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 과학기술자들이 시민사회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 때가 무르익었다 할 수도 있으리라. 물론 그 시점이 2016년이었던 건, 시절이 특히 엄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론 2015년 11월 평화의 섬 제주에서 있었던 워크숍이 계기가 되었다. ‘과학기술과 진보’라는 거창한 주제로 1박 2일 동안 열린 워크숍에서, 18명의 참석자가 ESC를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이어 2016년 1월부터 다섯 차례의 오프라인 모임과 수많은 온라인 토론을 거쳐 100여 명의 창립회원이 모이게 되었다. 설립 후 1년 4개월, 설립 준비 과정을 포함하면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ESC엔 현재 430여 명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다.

일을 하다

ESC는 일을 하려 한다. 전체 프로그램은 집행위원회에서 기획하지만, 여섯 개의 전문위원회(과학문화위원회, 청년과학기술인위원회, 크라우드펀딩위원회, 열린정책위원회, 과학교육위원회, 해외과학기술인위원회)가 각각 독립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해법을 추구하기도 한다.

과학문화위원회는 강연과 기고 외에 ‘어른이 실험실 탐험’을 운영해 어른들이 과학활동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른이는 어린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어른을 일컫는 말이다. 초파리를 직접 관찰했고, 커피 방울에 담긴 과학을 맛보기도 하였다. 로봇 실험실도 방문했고 세이프캐스트와 함께 방사능 측정기를 조립해보기도 하였다. 이런 행사의 바탕엔, 과학은 ‘하는 것’(doing science)이며 결과보단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청년과학기술인위원회에선 대학원생이나 박사후연구원 같은 청년 과학기술자의 인권에 관심이 있다. 실험실 안전과 관련해선 연구실안전법과 연구활동종사자보험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였다. 대학원생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은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라는 시민권의 문제와 대학의 재정이라는 현실의 문제가 겹쳐 있다. 해법 마련이 쉽진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논점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 밖에 청년 일자리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기도 하였고, 지금은 연구실 생활을 게임 형태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게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위원회가 하는 일은 시민이 원하는 연구과제를 시민이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16년 12월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의 ‘트랜스젠더 건강연구’가 첫 과제로 선정되었다.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힘들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건강은 당연히 정부가 챙겨야 하는 문제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ESC는 차선책으로 이 연구를 크라우드펀딩에 부치기로 하였다.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ESC의 성격과도 잘 어울리는 과제였다. 다행히 크라우드펀딩은 성공했고, ESC는 의미있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크라우드펀딩 2호 과제는 ‘스키 타는 로봇’이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로봇 프로젝트로, 지금 펀딩이 진행 중이다.

열린정책위원회의 출발점은 올해 2월 ‘대통령 후보에게 무엇을 묻고 요구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타운미팅이었다. 타운미팅의 결과물은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되었고, 당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가 ESC에 답변서를 보내왔다. 열린정책위원회는 이어 과학기술계 리더십과 관련한 설문을 하였고, 지금은 헌법에 과학기술을 어떻게 담는 게 좋을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최근 설문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과학기술은 현재 헌법 제127조 1항에 이렇게 언급돼 있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ESC 회원들 대다수는 이처럼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만 보는 데 반대하며, 이 조항의 삭제를 바란다. 아울러 과학기술을 국가가 장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총강에 두자는 제안도 덧붙인다. ESC는 이런 주장이 개정 헌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최근엔 과학교육위원회가 출범해, 시민 교양으로서의 과학 교육에서부터 창의적 과학기술자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 개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의 논점을 짚어 가고 있다. 또 열린정책위원회에서 맡았던 개헌 관련 논의는 개헌 태스크 포스(TF)가 이어받아 주도하고 있다. 참여의 폭을 열린정책위원회 밖으로 넓히기 위해서다. 원자핵에너지 TF도 만들어져 지금 공부를 시작한 상태다. 독서 소모임을 구성해 함께 책을 읽는 회원들도 있다.

ESC 전체의 문제를 고민하며 주요 결정을 내리는 집행위원회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당해왔다. 황우석 사태 10년인 지난해 11월엔 ‘한국 과학기술 진보를 위한 국가 시스템 진단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였다. 올해 4월에는 트럼프 정부의 반(反)과학 정책으로 촉발된 국제적 과학 행진(March for Science) 운동이 한국에서도 있었는데, ESC는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 같이 이를 기획하고 주도하였다. 7월엔 청와대 국민인수위원회가 마련한 광화문 1번가에서 ‘과학과 기술이 즐거운 나라’라는 제목의 열린 포럼을 주관하였다. 겨울에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 광장에서 여름엔 기초과학, 과학기술정책, 과학교육, 청년과 여성 과학기술인을 주제로 뜨겁게 토론했던 것이다. ESC는 그렇게 겨울에도, 여름에도 광장에 있었다.

문화를 만들다

ESC는 그동안 두 번의 성명과 두 번의 논평을 냈다. 첫 성명서는 지난해 11월 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책임을 묻는 시국선언문이었다. 가장 최근의 논평은 ‘과학을 경제의 도구로만 보지 말아 달라’며 정부의 과학관(觀)을 비판한 것이었다. 하지만 ESC는 사안마다 성명을 발표하는 곳이 아니다. ESC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다양한 활동을 구체적으로 전개하려 한다. ESC 전체가 성명이나 논평을 내는 일은 모든 회원이 글 하나를 함께 쓰는 거나 마찬가지니,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절차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ESC 이름의 견해는 회원 과반의 응답과 응답자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과학관(觀)에 대한 최근의 비판 논평도 이런 절차를 거쳐 나오게 되었다.

ESC는 조직 내 민주주의와 수평적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ESC 안에선 나이와 직위를 따지지 않고 이름에 ‘님' 자를 붙여 부르려 한다. 이런 호칭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이제 글쓴이는 ‘태웅 님’이라는 호칭이 더 귀에 익다. 서로 높이는 부드럽고도 평등한 언어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판단에 이르게 되는 모습이 ESC에서 일상화되리라 믿는다.

여럿이 같이 가다

ESC는 과학기술자 모임이 아니라 과학기술인 공동체다. ESC에선 과학기술자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에 관해 고민하는 과학기술학자와 저술가, 과학기술 관련 교사와 문화·예술·언론인,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모두 일컬어 과학기술인이라 한다. ESC엔 그렇게 조금씩 다른 데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과학기술인이 모여 있다.

다양성은 소중한 가치다. 연회비를 내는 학생이나 월회비를 내는 직장인이나 회원의 권리는 모두 똑같다. 소수자 차별에 반대함은 물론이다. 젠더 감수성도 중요한 덕목이다. 여성 회원 비율은 현재 31%다. ESC는 더 많은 청년과 여성의 참여를 기대한다.

이제 겨우 첫돌 넘기고 넉 달이 지났을 뿐인데,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또 너무 많은 일에 대응해야 했다. 내실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이 나오는 까닭이다. 페이스북 의존도가 높은 온라인 환경도 문제다. 토론과 의사 결정에 알맞은 온라인 시스템을 구성할 필요도 있다. 그간의 모든 활동을 정밀하게 기록하지 못해온 것도 아쉬운 점이다.

ESC 소개를 마무리하며, 제대로 된 나침반은 바늘 끝이 늘 떨고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 나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고장 나지 않도록, ESC도 늘 성찰해야 하리라 여긴다. ESC에 대한 건설적 비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좋은 세상을 숙고하는 모든 이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