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작가 제공

김명호 작가 제공 

지난 7월 4일, 광화문 한켠에서는 과학기술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장이 펼쳐졌다. '광화문 1번가: 국민인수위원회'라는 이름의 장은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새 정부에 전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나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주관한 '과학과 기술이 즐거운 나라‘ 포럼 중 과학교육 파트를 맡아 발표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전해보고자 한다.

 


1. 학생중심 교육과정


"우리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여러 가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미래를 예측할 능력이 적은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40년 후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예측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기술은 혼돈, 무지, 변화의 상태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구체적인 정보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정신적 균형이나 유연성을 기르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모데우스’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7월 13일 이화여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현재 우리는 지식의 종류와 습득 방식, 일자리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변환기에 서 있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이러한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고 아직은 모호하기만 한 ‘4차산업혁명’이란 단어가 과학기술사회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도 거기에 맞추어 패러다임 변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잘 축적하는 방식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언제든 배울 자세와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의 교육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과학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교사중심, 강의식 수업, 주입식 교육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협력해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배우는 ‘학생중심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과학기술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반 시민이 갖추어야할 과학적 소양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될 2015개정 교육과정에는 이러한 철학이 잘 반영되어 있다. 

 


2. 2015 개정교육과정과 교과서


“여러분에게 퀴즈를 내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명시된 과학교육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광화문 1번가에 모인 청중들에게 과학교육의 목표를 물었는데, 대답하는 분이 드물었다. 낯선 공간, 낯선 청중 앞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점도 작용했겠으나 과학기술을 공부하거나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 과학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 명시된 과학교육 목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갖고,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기른다.
  2. 자연 현상 및 일상생활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을 기른다.
  3. 자연 현상을 탐구하여 과학의 핵심 개념을 이해한다.
  4. 과학과 기술 및 사회의 상호 관계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기른다.
  5. 과학 학습의 즐거움과 과학의 유용성을 인식하여 평생 학습 능력을 기른다.


교육과정 상에는 사람들이 흔히 과학시간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학개념의 이해’ 외에도 ‘흥미’, ‘호기심’, ‘탐구능력’, ‘과학적 소양’, ‘평생 학습 능력’까지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2015 개정교육과정 지침을 살펴보면 이러한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탐구 중심’, ‘학생 중심’의 수업을 강조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수업 전략으로 실험, 토론, 글쓰기, 프로젝트수업, 과제연구, 과학관 견학 등을 권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과학과 핵심역량으로는 과학적 사고력, 과학적 탐구 능력, 과학적 문제 해결력, 과학적 의사소통 능력, 과학적 참여와 평생 학습 능력을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과정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교과서는 어떻게 쓰여 졌을까? 내년에 도입될 고등학생용 통합과학 교과서의 일부분을 예시로 들어보자. (이 예시는 내가 저자로 참여한 교과서에서, 주도적으로 집필한 부분을 뽑은 것이다.)


첫 번째는 ‘지구와 우주의 환경에 영향을 주는 산과 염기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주제의 탐구활동인데, 주어진 과학기사의 내용을 요약하고 제목을 정해보는 활동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기사를 작성해보는 활동으로 이루어져있다. 

 

두 번째 활동은 ‘천연지시약을 이용한 그림 그리기’인데 먼저 조별로 천연지시약의 사례를 조사하고, 재료를 준비하여 천연지시약을 만든다. 그리고 천연지시약의 색이 산과 염기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본 후, 그걸 활용해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는 활동으로 꾸며져 있다.      

이전의 교과서와는 달리 탐구의 과정이 단계마다 구체적으로 안내되고 있고 교사와 학생의 역할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활동을 하고 나면 보고서 평가, 발표 평가, 관찰 평가, 동료 평가 등 다양한 평가를 통해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평가기준을 자세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활동을 통해 어떤 핵심역량을 키울 수 있는지도 명시하고 있다. 

 


3. 학생중심 교육과정을 위한 인프라 구축


이러한 ‘탐구중심’, ‘학생중심’의 과학교육이 학교 현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학교사가 수업 개선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지녀야함은 물론이고 교사가 이러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현장의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몇 가지만 함께 살펴보자.


첫 번째, 학급당 인원수가 25명 이하로 감축되어야 한다. 40명의 과밀학급에서 모둠학습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이 든다. 학생 수의 자연감소로 인해 평균 30명에 가깝게 학생 수가 감축되었다고 하지만 이를 근거로 과밀학급이 해소되었다고 보는 것은 평균의 오류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학생들의 지원율이 높은 일반학교에는 아직도 학급당 40명을 배정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두 번째, 실험실습비의 확충과 과학실험조교 의무화가 필요하다. 실험 위주의 과학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의 확충과 적정한 실험실습비의 확보가 필요하다. 한때 학교운영비의 3%를 실험실습예산으로 책정하도록 권장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더 퇴보해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교마다 실험예산이 천차만별이다. 1년 실험예산이 500만원도 안 되는 학교도 많다고 한다. 또한 실험 수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준비하고 실험실 관리와 안전을 책임질 과학실험조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과학실험조교를 두고 있지 않으며 공립학교의 경우에도 실험조교가 다른 학교 업무를 겸임하면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험수업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 번째, 평가방법과 대입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과학교육의 문제는 교육과정이 제대로 교육의 본질을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실에서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가 일치하지 않고 따로 노는 것이 문제이다.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기를 원한다면 이제 평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현재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치루고 있는 수학능력시험이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는 데 적합한 평가방법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5지선다형의 수능문제로 이러한 과정 중심, 학생중심교육을 평가할 수 있을까? 과학적 탐구능력이나 과학적 소양을 평가할 수 있을까? 현 정부에서 수능제도의 절대평가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일면 환영할 일이나 거기서 더 나아가 수능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기를 요구한다. 평가 방법과 대입제도의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교육과정과 수업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 계속 현장에서 겉돌 것이고 과학교육의 미래는 암울하다. 


네 번째, 과학교육활동이 학교 밖 다양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중심활동이 학교의 벽을 넘어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형식과학교육기관인 학교와 비형식과학교육기관인 과학관, 박물관, 연구소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과학관에 파견교사제도를 만들어 과학교사가 과학관측과 협력하여 교사연수나 체험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하는 것을 제안한다. 또한 비형식과학교육기관을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동네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과학센터가 세워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사실 이러한 요구는 한두 가지를 빼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래 전부터 수많은 과학교사와 과학교육연구자가 주장해온 것이다. 우리가 과학교육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본질적인 문제를 살피고 기초적인 교육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것이 과학교육의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원문 보기: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9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