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상황의 특수함 때문에 과학기술은 줄곧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의 도구로 이해되어 왔다. 물론 과학의 응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관점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그것의 편협함에 있다. 과학의 오래된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과학은 그 응용을 통해 편리와 풍요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의 결과물이기에 앞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본성과 무궁무진한 변화에 대한 쉼 없는 질문과 그것에 대답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성찰의 과정들이었다.

 

역사 속에서 과학은 인간이 세상을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왔을 뿐 아니라 인간이 그 세상과 어떻게 적절히 조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색하는 과정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할 때 우리 과학교육에 꼭 있어야 할 요소 가운데 놀랍게도 빠져 있는 네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중심으로 한국 과학교육이 앞으로 지향했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한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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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과학고 학생들과 이공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문소양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과 같은 기술적 성과가 사회 도처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는 양적 과잉을 넘어 질적 변화의 전환점에 도달했고, 노동과정과 노동시장의 급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의 지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기계적 지능이 등장이 예고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조만간 ‘포스트 휴먼’이라는 화두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점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전환의 시점에서 과학기술 활동은 높은 창의력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 받고 있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과학탐구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창의적인 과학적 성취를 이루기도 어려울뿐더러, 더 나아가 그러한 과학적 성취가 인간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그 활동을 펼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그러함에도 지금의 과학기술은 논문이나 기술이전과 같은 성과에만 매몰된 채 돌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나침반과 지도 없이 쾌속 항해를 독려하며 이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연이나 생태계 내 인간의 적절한 역할과 위치선정, 정보나 사회적 재화의 불균등을 강화하지 않고 완화시킬 수 있는 발전 방향성에 대한 모색, 그 귀결로 사회와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고 보완하는 과학기술이 과연 무엇일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과학교육 즉 학제별 전문가 양성 교육은 이러한 지향을 올바르게 담아내기 어렵다. 위에서 제시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광범위한 인문학 교육이 이공계 진로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비이공계학생들에 대한 광범위한 과학교양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앞서 기술한 바대로 과학기술은 급변하는 사회가 지닌 변화의 원리이다. 즉 과학기술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이해 및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은 현대인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개발과 발전을 위한 도구로써의 과학’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보자면 과학기술은 전문가들의 언어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프레임을 깨고 ‘교양이자 세계관으로써의 과학’이라는 시각을 갖게 되는 순간 과학기술의 기본 원리는 모두가 공유해야 할 중요한 자산이 된다. 과학기술은 현대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쳐 사회 구조의 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임과 동시에 인간이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와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 과학기술은 급변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 되었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고등, 대학 비이공계학생들의 과학교양교육이 제공될 수 있는 과학교육 체계의 구축이 요청된다.

 

ESC의 목소리 제공

괴팅겐의 X-lab 

 

셋째, 실험을 비롯한 과학활동이 과학교육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한다.


과학교육에서 실험을 비롯한 활동은 있으면 좋은 선택적 요소가 아니라 필수요소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실현 가능한 형태로 재정의하는 능력, 아이디어를 실제로 현실 속에 구현하는 능력, 실험을 진행하면서 정보를 선별하고 적용하는 능력, 협력하여 일을 도모하는 능력, 주어진 상황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 등은 이론 중심의 하향식 정보전달 교육을 통해서는 기를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과학고를 비롯한 일부 학교에서 영재교육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R&E (Research and Education)를 제외하곤 일반중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과학실험활동은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다. 우리의 학교 현실을 살피다 보면 이러한 상황이 이해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실험교육을 위해서는 실험실이라는 공간, 다양한 실험 장비, 실험을 지도할 인력 등의 요소가 필수적이며 이러한 요소를 일선 중고등학교가 빠짐없이 갖춘다는 것은 사실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과학교육에서 차지하는 실험의 위상을 고려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우선 개별 학교에서 실험활동의 비중을 높일 수 있는 시설 지원 및 교과과정 편재의 개선이 이뤄져야 하며, 더 나아가 실험활동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어 가급적 많은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과학실험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정부출연연구소, 지역 거점대학, 기업 연구소, 과학관 등의 단체들이 협력해 교육 계획(education initiative)을 구축하는 노력이 국가적 수준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독일의 괴팅겐대학 내에 있는 X-lab[1]은 인근 지역 짐나지움(일반고) 학생 및 과학교사를 대상으로 주 단위의 실험교육과정을 제공한다. 독일에는 이러한 활동을 펴는 지역 거점센터가 수십 곳에 달한다. X-lab의 경우 실험활동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건물과 시설 및 인력이 있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지역 거점 대학이 제공한 공간에서 주위 연구소 연구원들의 지도를 통해 실험 활동이 수행된다. 이러한 활동이 실현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즉 정부는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 및 공간에 대한 예산을 지원할 뿐 아니라,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자원봉사활동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대한 중요한 기여로 간주하여 대학 및 연구소 연구활동의 일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SC의 목소리 제공

네이처 제공


 

●넷째, 변화하는 사회에 조응하는 진로설계프로그램이 교과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공계 과학기술 노동시장의 급변은 이미 세계적 추세가 된지 오래 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2010년 이후 줄기차고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2].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한국 내 과학기술 노동 시장 및 직업군 변동 성향에 대한 체계적 분석 및 그에 바탕 한 진로설계프로그램 역시 전무 하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한편으론 과학기술 노동시장 및 직업군 변동에 대한 국가적 수준의 체계적 분석을 수행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를 바탕으로 진로설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는 이공계 대학교 및 대학원 교과과정이 편재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존재하는 과학기술직군은 교수 및 연구자와 같이 상당히 편협하고 단순한 양상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데 이를 보다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직군이 단순한 현실 양상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이 다양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를 우리 사회가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과학기술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에 상응하여 과학기술의 역할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의 소통(과학저널리스트), 과학의 대중화(과학커뮤니케이터), 과학기술의 사회적 적용(과학기술 컨설턴트), 과학기술 정책의 기획(과학기술 정책가), 과학과 예술의 접목(과학예술가) 등과 같이 다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내적으로 끊임없이 분기하고 신생하는 다양한 역할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직군들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해야 할 필요성이 갈수록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다변화 요소들에 잘 조응하는 진로설계프로그램이 이공계 대학, 대학원에서 기획되고 교육과정에 편입되어 교육되어야 하는 것은 긴급한 시대적 요청이다. 이러한 논의 및 대응방안 모색에는 개인이나 개별화된 단체들의 노력과 더불어 국가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할 수 있다.

 

※참고
[1] http://www.xlab-goettingen.de/
[2] Education: PhD factory, Nature 472, 276-279 (2011)

 

원문보기: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7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