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SC 사무국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20년 노벨상 수상 특집으로 회원님들의 논평을 게재합니다.

첫 번째 논평은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김홍표 회원님이 써주셨습니다.

다 읽고 나니 세균에게 경의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평을 써주신 김홍표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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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범 잡는 담비’라는 속담이 있다. 담비 생태 연구자, 최태영 박사를 인터뷰한 기사를(1) 보면 담비가 호랑이나 표범을 공격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잡는’을 못살게 군다는 투로 해석하면 과히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무리 짓는 습성을 지닌 용감한 담비가 호랑이 식사를 훼방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0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줄여서 크리스퍼라고 쓰기도 할 것이다)를 연구한 두 명의 학자가 노벨상을 탔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난치병과 미래식량에 구세주...’ 또는 ‘질병치료, 새 작물 개발...원천기술’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하여 크리스퍼를 설명하려 들었다. 크리스퍼가 질병의 치료 혹은 식량 증산에 돌파구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잔뜩 머금은 찬사들이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내가 담비 얘기를 꺼내든 이유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애초 무엇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짐작하다시피 여기서 담비는 바이러스의 대역이며 속담과 달리 바이러스는 세균이나 아니면 고세균인 호랑이를 죽일 수도 있다. 잠시 짬을 내 세균 잡는 바이러스에 대해 알아보자. 

세균 잡는 바이러스를 영어로 옮기면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이다. 파지(phagy)가 먹는다는 뜻이니 쉽게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박테리오파지 혹은 파지는 바이러스다. 생물권 전체를 통틀어 가장 풍부한 유기체인 파지가 발견된 지는 100년이 조금 넘었다. 파지는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수가 많다. 파지의 삶의 터전인 세균 숙주의 수가 많은 데다 생태계 곳곳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지는 제각기 선호하는 세균이 따로 있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에 특이하게 작용하는 파지를 선별하면 치료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30년 중반 설파제가 등장하고 뒤이어 페니실린을 필두로 항생제들이 본격적으로 의약품 시장에 뛰어들면서 동유럽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파지요법은 미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들이 속속 진화하면서 파지요법이 다시 과학자들의 시선에 포착되었다(2). 2011년 박테리오파지라는 저널이 출시된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늘 그렇듯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바닷속 세균에 승차하는 파지와 달리 세균이 인간의 장내 혹은 진핵세포의 안에 거주하는 상황이 되면 바이러스-세균-진핵세포 삼자 간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파지의 유전체 정보가 축적되면서 이들이 세균의 진화를 유도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파지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숙주의 유전체에 자신의 그것을 도입해야 하는 까닭이다. 세상은 자꾸 복잡해지고 교과서는 점점 더 두꺼워진다.

이제 상황을 바꿔 바이러스의 침범을 당한 세균 입장이 되어보자. 요플레와 같은 발효 유제품 생산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균이 죽어 나가는 상황을 연상하면 된다. 실제 덴마크 대니스코 연구진들은(3) 바이러스에 내성이 있는 세균을 분리하고 내성 기전을 밝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2007년이다. 바이러스 침입에도 살아남은 세균의 유전체에 반복되는 유전자 회문 서열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바이러스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체 조각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약 15년 전인 1993년 스페인의 모지카 박사도 짠물을 좋아하는 세균에서 그런 유전자 서열을 찾아냈다. 다만 그는 그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는 바이러스에 내성을 띠는 세균의 크리스퍼를 자세히 살피고 우아하게 조작하여 유전자를 편집하는 보편적 도구로 새롭게 탈바꿈시켰다(4). 2012년 그들이 발표한 사이언스 논문의 제목은 이렇다.

설계 가능한 두 종류 RNA의 안내를 받아 작동하는 DNA 분해효소.

도대체 이 논문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떨고 요란한 특허 소송에 말려드는 것일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크리스퍼로 아주 싸고 빠르고 정확하게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살펴보자. 사실 위 제목에서 나는 원문에 있던 세균의 적응성 면역계라는 말을 뺐다. 다시 말하면 외부에서 유입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싹둑 잘라내는 역할을 하는 DNA 분해효소 가위가 세균 면역계의 일부라는 뜻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분자생물학자들이 이런 가위를 사용해서 유전공학의 시대를 열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가위 자체는 얘깃거리가 못되었다. 크리스퍼에서 엿볼 수 있는 진정한 진화적 참신성은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탐지하는 세균의 독창적인 방식에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전자 가위 체계에서 유전자 염기 서열을 인식하는 작업은 오롯이 단백질 소관이었다. 하지만 크리스퍼-유전자 가위 체계는 단백질 대신 날렵한 RNA를 사용한다. 고작 염기 약 20개 안팎의 RNA로 세균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외인성 유전물질을 감지하고 이를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균은 과거에 자신을 침입했던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탈취하고 DNA에 끼워 보관했다가 다시 그 바이러스가 침범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 

세균 말고 고세균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가지고 바이러스와 싸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종류의 유전자 가위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적할 무기로 등장한 팩-맨(PAC-MAN)이라는 장치는 카스9대신 카스13d라는 가위를 장착하고 있다. 올 4월 [셀]에 코로나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항바이러스 전략에 크리스퍼를 이용하겠다는(5) 논문이 실렸다. 인간의 폐 상피세포 안에 도달한 바이러스 유전체를 겨냥해 크리스퍼를 설계했다는 논지였다. 팩맨은 인간 세포에 작용하는 예방적 항바이러스 크리스퍼(prophylactic antiviral CRISPR in human cells)의 줄임말이다. 21세기 들어 사스와 마르스와 코로나19처럼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의 바이러스가 인간집단을 방문했다. 이들 코로나바이러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유전자 염기 서열을 겨냥한 몇 종류의 크리스퍼 칵테일을 감염된 인간 세포에 넣어 거의 90%에 이를 정도로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었다는 결과였다. 상당히 희망적인 논문이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팩맨 연구를 주도한 스탠퍼드 대학 과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한 방식이었다. 그들은 연구 결과를 인터넷망에 공개하고 공동 연구자들을 모색했다. 그들에게는 크리스퍼를 인간 세포에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또 다른 전문가들이 절실했다. 사회통신망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나노입자를 써서 DNA나 RNA를 세포 안으로 운반해왔던 전문가들이 나타난 것은 물론이다. 

파지요법이나 팩맨이 갈 길은 멀다.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크리스퍼를 설계하면서 한 능선을 보기 좋게 넘었다 해도 아직 올라야 할 산은 많고 높다. 최근 몇 년 동안 크리스퍼가 노벨상을 받으리라 예측하면서도 특허 전쟁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순간만은 크리스퍼라는 보석을 발견한 두 여성 과학자의 쾌거에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체계를 다듬고 진화시켜온 세균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인간의 밝은 눈에 노벨상이 주어졌다. 그러나 세균에게 돌아갈 몫의 영광은 마땅히 그들의 것이다. 

 

참고한 것들

1) 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 고라니만 1만 마리, 담비가 먹어치워. 담비전문가 최태영 박사 인터뷰, 2014년 3월 25일. 한겨레 신문

2) Matsuzaki S et al. Perspective: The age of the phage. Nature, 509, S9 (2014).

3) https://www.the-scientist.com/notebook/theres-crispr-in-your-yogurt-36142.  

4) Jinek M et al. A programmable dual-RNA-guided DNA endonuclease in adaptive bacterial immunity. Science, 337, 816-821 (2012). 

5) Abbott TR et al. Development of CRISPR as an antiviral strategy to combat SARS-Cov-2 and influenza. Cell, 181, 865-876 (2020). 

6) 국내에 크리스퍼를 소개하는 대중서는 대략 5권이다. 수상자인 다우드나가 쓴 [크리스퍼가 온다]가 있고 강릉대학교 전방욱 교수도 두 권의 책을 썼다. 크리스퍼를 소개하면서 그는 기술 사용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했다. 연세대 송기원 교수도 [포스트게놈시대]라는 책에서 크리스퍼를 소개했다. 눈치를 챘겠지만 나도 세균의 적응성 면역계를 강조하면서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이란 책을 출간했다.